공부는 뇌를 쓰는 일이고, 뇌를 쓰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잡다한 생각들이 흘러들어온다. 관성으로 계속 돌아는 가는데 내 통제를 벗어난다.
작년 8월부터 4개월정도 쉬었다. 정말 필요한 휴식이었던 것 같다. "공부ㅠㅠ 취업ㅠㅠㅠ 스택ㅠㅠ 스펙ㅠㅠㅠ 남들과 비교ㅠㅠ 조급해ㅠㅠ" 이 굴레에 갇혀서 불안함 때문에 다른 생각은 일절 못하게 나를 통제했는데, 사실 삶의 행복도는 이런 잡생각에서 오는 영감이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결국 잡생각이 나를 만들었다.
"시간 아깝게 잡생각을 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을 가지다보니까 하루하루가 고됐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고통받는다니..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시간에 쫓기면서 강박적으로 하던 알고리즘과 공부를 잠시 놓고 내 잡생각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놀랍게도 별거 안했는데 굉장히 평온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안정적이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평생할 일을 고른다면 어떤걸 하면 좋을까, 다시 한 번 길게 고민해봤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고민..! 고민...!!! 이 아니라 산책하다가 문득, 밥먹다가 문득, 버스타다가 문득, 노래듣다가 문득, 자기전에 문득. 가장 관심있는 주제다보니 문득문득 계속 떠올랐고, 떠오를때마다 고민해봤다. 길다는건 4개월 동안 찔끔찔끔 고민했다는거다.
나는 왜 기계공학과를 전공했는가? 그때의 난 꽤나 한결같았다. 과별 입결 이런 건 일절 신경 안쓰고 그냥 정시 가나다 기계! 수시 6논술 기계기계기계!
초등학생때 했던 레고 경험이 이 선택에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난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파먹을 수 있다. 다른 의심, 고민, 걱정 없이 그냥 몰입했다. 등수에 그리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만든게 대회장에서 갑자기 벼락 맞는 일 없이 제대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과는 사실 기억도 잘 안난다. 꽤 좋았던 것 같긴하다. 중요한건, 그냥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웠고, 그때의 즐거움들이 내 기억 저 깊이 남아서 아직까지도 즐겁게 속닥거린다는 것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나는 퀴즈를 좋아했다. 문제 해결을 좋아했다. 미션이 주어지고, 재료가 주어지고, 시간이 주어지고, 나는 재료를 조합해서 미션을 클리어하는 그 과정이 좋았다. 또 손으로 조물조물, 똑딱똑딱 레고를 끼우는 리듬감과 촉감이 좋았다. (과학상자보다 레고가 좋아따 과학상자는 금속 냄새나고 손아파서 시러따) 그리고 내 결과물이 직접 움직이는걸 눈으로 보는게 좋았다. 이게 내게 큰 성취감을 줬던 것 같다.
아무튼 기계과는 그런 걸 배우는 줄 알았다. 그치만 사실 기계과에서는... 역학을 배워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했다. 하나 있는 실습에서는 금속을 갈아야했고, 힘으로 나사를 깎아야 했고.. 사실 이 작은 실습 자체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내가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한 수업이었다. 하지만... 기계는 물렁물렁 개복치인 나에겐 너무 강하고, 메탈릭하고, 야성적이었다. 공장은 기름 냄새가 나는 거대한 금속들이 우르릉쾅쾅 움직이는 꽤나 위험한 공간이었고 내가 공장 관리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나와 결에 안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아빠의 공장피도 물려받았지만 엄마의 예술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싶다.
그래서 모든 문제 해결을 따뜻한 방구석에서 차한잔 따라놓고 할 수 있는 컴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뭐 그 뒤에 이러저러한 일들을 거쳐서 1년 AI 공부하다가 '이건 기술자가 아니라 연구자가 하는 일이었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대로 하려면 대학원을 가야겠는데, 근데 그건 내가 원하던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백엔드가 아닌 AI 부캠을 들었던 첫 선택의 시간을 다시 돌아봤다. 이건 4학년 말에 참여했던 스타트업 준비 팀에서 작고 허술하지만 데이터라는걸 처음 다뤘던 경험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때 데이터 만지는게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재밌었다. 당장은 가치가 없는 raw 데이터였지만 그 안에 분명 보석이 있었다. 내가 그걸 캐내는 임무를 맡았다. 비즈니스 목적에 맞게 가공하고 정제해서 적재했고,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돌리니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강아지 사료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때 데이터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이 과정이 (학부생의 얼레벌레 주먹구구식 문제해결이긴 했지만, 아무튼) 너무 멋졌다.
그래서 데이터 하면 AI 아니겠어? 하고 AI 코스를 무턱대로 신청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백엔드 코스를 듣는게 내가 원하던 방향성에는 더 맞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튼, 이때 AI 코스를 들었으니 딥러닝에 대한 조그마한 이해라도 가지게 된거겠고, 데이터 엔지니어라는 직군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된거니까. 조금 돌긴 했지만 아무튼 길은 찾았다.
그래서 이걸 왜 썼지? 아 이제 슬슬 다시 취준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번엔 취준의 목적과 목표가 상당히 명확해져서 굉장히 튼튼한 취준생으로 시작한다. 약간.. 로그라이크 게임하듯, 이전에 나는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같은 걸 또하긴 하지만) 능력치를 조금 더 찍고 시작하게 됐다.
엇 하데스 하고 싶다 로 글을 마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