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사람을 침울하게 한다.
기침과 콧물로 숨쉬는게 불편해서 결국 4시도 되지 않아서 깼다.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10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로 안정된 신체 리듬과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심리적 안정을 꿈꿨는데.. 고작 하루만에 꼬인 것이다. 눈 뜨자마자 찝찝한 마음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 눈에 띄는 3시가 좀.. 미웠다.
감기 때문에 고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10월쯤이었나 그때는 지금보다 목이 훨씬 붓고 열도 오르고 몸 컨디션도 지금보다 훨 안좋긴 했다. 아무튼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항상 겪는 감기 증상은 흉부의 갑갑함과 꺼억꺼억 소리가 섞인 폐를 쥐어짜는 기침이다. 보통 1년에 한번쯤, 독감이 유행하면 어김없이 2주는 밤새 기침하고 추가로 한달은 콜록댄다. 특히 공기가 찹거나 건조한 기간엔 들숨 한번에 숨이 턱 막히면서 기침을 한다.
내가 폐가 약하다는건 대충 알고 있었다. 평소엔 별 문제가 없지만 달리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등산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숨쉬는걸 힘들어했다. 최근에 기차 시간이 다돼서 (결국 놓쳤다) 서울역 공항철도에서 지상으로 허벌나게 뛰었는데 '기차는 무슨 차라리 죽고 말아야지' 싶은 생각이 들때쯤부터 결국 걸었다. 폐에는 통각이 없다는데, 이정도면 폐가 아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도 안나오고, 거의 한 시간을 섹섹대면서 기침했다.. 단순 운동부족이라고 늘 나의 게으름을 탓했지만 가만보면 그냥 태생이 약한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삶의 질을 좀 높이려면 폐를 강화하는 운동을 해야할 것 같다. 들이 쉴 수 있는 습한 공기가 가득한 수영을 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촉촉한 마스크를 끼고 러닝머신을 조금씩 뛴다던가... 근데 요즘 진짜 무릎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꾸 아파서 수영을 해야할 것 같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기침하다가 깨서 기분이 안좋았지만 심호흡 하면서 혈압을 좀 높이고 주섬주섬 아침 일기를 썼다. 오늘의 주제는 무엇이 내 삶을 가치있게 하는가. 쓰다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고, 문득 며칠 전에 있었던 사소한 일이 생각났다. 인터넷을 그냥 떠돌다가 한 감성사진을 봤는데 사진 구석에 책이 한권 놓여있었다. 그런 사진에 있는 책 제목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제목을 더듬더듬 읽었다. 영어였다. When breath becomes air. 숨결이 바람될때.
내 책장에 꽂혀있지만 잊고 있던 책이었다. 수년 전에 어디선가 추천 글을 보고 샀던 책이었다. 은마상가 책갈피가 꽂혀있으니 적어도 4년 전에 샀던 책이다. 한번도 펼쳐본 적은 없었다. 그때도 제목이 어쩜 이럴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며칠 전에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만났을 때 또 울컥했던게 기억났다. (어떻게 책제목이 ㅅ무결이 발마될ㄷ떄ㅠㅠ) 마침 오늘은 요 며칠 읽던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고 어떤 감명을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슥 책꽂이로 가서 오래도록 꽂혀만 있던 책을 꺼냈다. 흰색 하늘색 표지가 참 예쁘다.
근데 펼치자마자 책장도 아니고 그 표지 뒤에 접힌 곳에 적혀있는 작가 소개에서 잉잉 울고말았다... 어제 장례식장을 갔다왔다고 했던 친구의 얘기와 겹치기도 했다. 서른 중반의 죽음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우린 영화를 보고 울지만 정작 주변인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을 마주했을 때는 함께 울어주지 못하기도 한다.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 가늠이 되지 않아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무튼 책을 읽었고 어처구니 없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나니까 결국은 그냥 감기를 잘 이겨내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었다. 방금 딱 이 구절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